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숙원이던 핵추진 잠수함(SSN) 건조를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표면적으로 이는 한미 동맹의 격상이며 파격적인 선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그 건조 장소로 ‘필리 조선소’를 특정했다는 지점을 파고들면, 이 ‘승인’은 사실상 정중하고 교묘하게 포장된 ‘외교적 거절’에 가깝다는 냉정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승인’이라는 달콤한 포장지를 벗겨내면, 그 안에는 ‘불가능한 과제’라는 내용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
핵잠은커녕 군함 건조 능력도 없는 ‘필리 조선소’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트럼프가 지목한 ‘필리 조선소’의 현주소다. 최근 한화그룹이 인수한 이 조선소는 미국 동부의 상선을 건조하는 조선소다. 주력 사업은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건조이며, 현재 군함은 건조할 수 없다. 군함을 제외한 관용선 건조 실적도 미 해사청(MARAD) 소속의 훈련선(NSMV) 건조나 예비 수송선(FSS) 수리 정도가 전부다.
분명히 하자. 필리 조선소는 현재 미 해군의 주력 전투함을 건조하거나 정비할 수 있는 시설, 인력, 인증(FCL 등)이 전무하다. 일반 상선과 군함은 설계 개념부터 요구되는 품질 보증, 보안 등급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하물며 군함 중에서도 최고 등급의 기술과 보안이 요구되는 ‘핵추진 잠수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마치 승용차만 만들던 공장에 F-35 전투기 생산 라인을 당장 다음 달부터 가동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굳이 이 조선소를 지목한 것일까? 후자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핵잠 승인’이란 단어 뒤에 숨겨진 장벽들
필리 조선소가 핵잠 건조 능력을 갖추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단순히 ‘설비 투자’ 수준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수준의 프로젝트다.
첫째, ‘핵(Nuclear)’ 관련 시설과 인허가 문제다. 핵잠은 원자로를 다룬다.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와 해군의 기준을 충족하는 특수 보안 구역, 원자로 조립 및 핵연료 처리 시설을 짓고 인허가를 받는 데만 최소 5~7년이 소요된다.
둘째, ‘인증된 인력’이라는 병목 현상이다. 이것이 가장 치명적이다. 핵잠 건조에는 일반 용접공이 아닌, 고도의 N-Stamp(원자력 인증) 자격을 갖춘 특수 용접공과 기술자가 수천 명 필요하다. 이들은 7~10년의 훈련과 경험을 통해 양성된다.
심각한 현실은, 이미 수십 년간 핵잠을 만들어 온 미국의 터줏대감 일렉트릭 보트(EB)나 뉴포트 뉴스(HII)조차 이 숙련공 부족으로 자국의 버지니아급 핵잠 건조 일정이 2~3년씩 지연되는 최악의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조선소도 인력이 없어 허덕이는데, 상선만 만들던 필리 조선소가 이 ‘핵심 인력’을 어디서 확보할 수 있단 말인가?
셋째, ‘SUBSAFE’라는 미 해군의 품질보증 프로그램이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이 까다로운 안전 인증을 통과하고, 폐쇄적인 핵잠 공급망에 편입되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모든 과정을 가장 낙관적으로 가정해도, 첫 번째 핵잠이 실전 배치(전력화)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장기 과제다. 우리 다음 세대에나 실현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한 이 계획을 두고 당장 ‘승인’이라며 환호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노련한 장사꾼 트럼프의 ‘거절의 기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승인’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동맹의 요청을 들어주는 ‘관대한 동맹’의 이미지를 챙겼고, 한화의 필리 조선소 인수를 자신의 ‘미국 조선업 재건(MASGA)’ 성과로 포장했다.
동시에 NPT(핵확산금지조약) 위반 소지, 민감한 핵 기술 이전 문제,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 등 골치 아픈 외교적 난제들은 ‘필리 조선소’라는 현실적 장벽 뒤로 모두 미뤄버렸다. 이것이야말로 듣기 좋은 말로 상대를 무력화하는 고차원적인 ‘거절의 기술‘이다.
심해에 띄운 ‘희망’, 또 다른 대왕고래인가?
우리 정부도 문제다. 과연 이 냉정한 현실을 몰랐을까? 조선 강국인 한국의 정부와 전문가들이 이 간단한 사실을 간과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만약 알면서도 이를 대대적인 ‘외교 치적’으로 포장해 홍보했다면, 이는 국민의 눈을 속이는 행위다.
최근 막대한 탐사 비용과 불확실성으로 논란이 된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그림자가 짙게 겹치는 것은 우연일까? 실현 가능성이 아득한 청사진을 당장의 성과로 포장하는 익숙한 패턴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결국 한국이 손에 쥔 것은 ‘핵잠 승인’이라는 화려한 라벨이 붙었지만, 정작 축배를 들려 하니 ‘비어있는 샴페인병’과 다를 바 없다. 불가능한 조건을 내건 ‘승인’은 승인이 아니다. 이는 단지 ‘거절’을 의미하는 가장 세련된 외교적 수사일 뿐이다.
/